탐서주의자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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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표정훈

출판사=마음산책

탐서주의자의 책

책에 관한 책이라?..글세..?
책에 대한 정보라면 인터넷에서도 넘쳐나고 있고 또 사흘이 멀다 하고 서점에 들락거리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리고 기껏 해봐야 다이제스트 정도 일 것이고 다이제스트라면 취재목적이 아니면 별 필요 없는 거 아냐?..

이런 이유로 난 책에 관한 책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자고 나면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 홍수 속에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도 대단한 독서기술이라고 생각한 나에겐

굳이 그런 류가 아니더라도 읽어야 할 게 산더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서주의자의 책에 이끌린 것은 순전히 그 제목 때문이었다.

책장을 넘기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탐서주의자眈書主義者. 책의 소유를 삶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과 선위에 두는 사람”.

재밌는 표현이다.

게다가 이 정의에 따르면 나는 탐서주의자가 분명했다.

나는 책을 읽고 모으고 진열하고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디자인까지 잘 꾸며진 책을 보고 있노라면 꿀떡 삼켜 버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런 나의 책에 대한 애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족은

이틀이 멀다 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오는 택배를 받는 내가 너무 책에 집착하는 거 같다고 걱정한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사들이는 거 아니냐며 정말 이 책을 다 읽기나 하냐는 듯한 의뭉스러운 눈길로 나를 본다.
 

그러한 눈길에 난 결백을 주장할 순 없다.
집안에 꽂혀 있는 삼십 퍼센트의 책들은 여전히 모태솔로로 순수성을 간직한 채 나이만 먹어가지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난 또 책을 산다.
 

난 내 관심분야의 신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행된 채 여기저기 떠도는 꼴을 도저히 두고 못 본다..

더욱이 여타의 검색대에서 나의 눈에 띄지 않고 이미 반출되어

다른 이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을 볼 때면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나는 하루에 한 번은 인터넷 서점의 검색대에서,

그리고 이틀에 한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내 검색망을 빠져나와

능청스럽게 앉아 있는 책이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쓸 만한 놈이 눈에 걸렸을 땐 가차 없이 수배해 집안책장에 묶어둔다.

수배는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한다.

인터넷 서점은 그나마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착한(?) 서점이기(?) 때문에.


결국 탐서주의자라는 말에 이 끌려 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를 나누는 기분이랄까

저자 표정훈이 가진 책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에서부터 그가 책을 대하는 태도,

책에 대한 집착과 애정, 그리고 한번 feel(?)이 꽂힌 책은 반드시 사고야 마는 매니아적 태도에 이르기까지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게 많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질투심이 나기도 했는데 탐서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낼 만큼 책을 사랑한다는 그에게

내가 좀 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었고

다 읽고 나서는 나도 북 마니아임을 새삼 느꼈다.

그래, 난 책을 사랑한다.
<탐서주의자의 책>의 저자인 표정훈은 졸부들이 책으로 거실을 장식하는 것을 보고 비난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다른 물건 다 내버려 두고 책으로 장식한다는 생각이 그래도 건전하지 않냐는 것이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들의 의도를 지나치게 순수하게 보는 거 같아 동의할 순 없다.
더욱이 거실을 읽지도 않는 고급양장본으로 장식한

(대게 이럴 경우의 책 제목은 매우 난해하고 잘 읽히지 않는 철학서적이거나 인문사회류의 고전들이다)

졸부를 탐서주의자라고 주장한다면 난 지금 당장 표정훈이 정의한 탐서주의자에서 이름을 내릴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건 지식 자체가 아닌 지식으로 포장된 일종의 지식권력이다.

배움에 대한 갈망도 아니다.

진정 교양과 배움에 대한 갈망이 끓어오른다면 사람은 자연 솔직해지고 구체적으로 배울 길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라.

배우려는 사람은 솔직하고 겸손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속담대로 돈은 개처럼 벌었으니 정승처럼 써보자는데 있다.

그런데 정승처럼 쓸라니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배움이 짧은 것이다.

남들도 자기를 졸부로 치부하며 무시하는 것 같다.

옛날 같으면 돈으로 말단 벼슬이라도 한자리 사련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팔자를 탓할 밖에.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아쉬운 대로 남의 눈에는 교양적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남의 눈에 교양적으로 보이기에 가장 적당한 소품은 당연 책일 것이다.

좀 있어 보이고 싶어서 책으로 도배를 했대도 그게 무슨 손가락질받을 일이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교양적으로 보여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것은 물론

그 교양으로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권위를 행사하겠다는 얘기다.

지식으로 포장한다는 것은 적어도 대한민국처럼 학벌이 강조되는 왜곡된 구조 속에서는 약발을 받는다.

졸부들의 그러한 행태는 왜곡된 구조를 십분 이용하겠다는 발칙한 의도가 보여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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