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
상처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영화 ‘밀양’을 보던 중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신애(전도연)가 아이를 잃은 뒤 절망을 거듭하다가 지친 마음과 몸을 끌고 교회에서 앉아 통곡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다가 ‘가슴이 아프다’라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의’ 비유가 아닌 실제 통증이라는 걸 새삼 알았다.
살아오면서 마음 아픔을 실제 흉통으로 느낀 적이 있어 낯설진 않았지만 그걸 영화에서까지 체험하게 될지는 몰랐다.
당시 극장 안에서 실제로 가슴을 맞은 듯 기침이 튀어나오는 통에 무척 곤란했었던 기억이 있다.
배우 전도연은 정말 칸의 여왕이 될만했다.
그러나 그게 전도연의 최고의 연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도연이 보여준 탁월한 연기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은, 분명 이창동 감독의 의도였겠지만 유난히 뒷모습 연기를 많이 보여준다.
노래방에서 춤추며 노래를 부르다가 아들 준의 전화를 받으러 잠깐 나와서는 다시 들어가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그 뒷모습이라거나 피아노 학원 개업을 하고 떡을 돌리러 아들 손을 잡고 동네를 걷는 전도연의 뒷모습은
배우 전도연이 아니라 ‘신애’ 그 자체였고, 신애는 뒷모습에서 많은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인공 ‘신애’는 영화 시작부터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차가 고장 나서 전화를 거는 장면이었는데 바람 부는 도로에 서서 카센터에 전화를 거는 신애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연민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 연민은 이어지는 씬에서 확실하게 관객의 마음에 새겨진다.
종찬(송강호)을 처음 만나 고장 난 차를 레커로 끌고 오는 차 안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 신애가 종찬에게 묻는다.
신애: 밀양은 어떤 곳이에요?
종찬: 뭐라카지..경기가 엉망이고, 한나라당 도시고, 부산이 가깝고예.
말씨는 부산 말 씨고, 급하고 말씨가.. 인구는.. 마이 줄었고.
신애: 아저씨 밀양이란 말뜻이 뭔지 알아요?
종찬: 뜻요? 우리가 뭐 뜻 보고 사나요 그냥 사는 기지
신애: 한자로 비밀 밀, 볕 양, 비밀의 햇볕. 좋죠?
종찬: 비밀의 햇볕? 좋네예..아, 오늘 바람 마이 부네.
씬은 도로를 달리는 종찬의 차에서 보이는 도로의 풍광을 비춘다. 그 위로 타이틀
‘밀양’ 이 새겨진다. ‘페이드 아웃’
영화는 다시 ‘페이드 인’ 되면서 밀양의 한 마을을 걷는 신애의 ‘뒷모습’ 에서 시작한다.
지친 것인지 삶에 찌든 것인지 흔들리듯이 걷는 신애의 뒷모습은
앞으로 밀양에서 삶이 위태롭게 펼쳐질 것이라는 걸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이어 아들 준의 손을 잡은 채 벽에 피아노학원 전단지를 손으로 눌러 붙이는 신애가
전단지 가방을 흔들며 걷는 뒷모습은 배우가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두했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이후에도 전도연은 자주 뒷모습 연기를 한다.
사람의 뒷모습은 앞모습에선 볼 수 없는 연민을 갖게 한다.
시인 정용철은 ‘뒷모습’이란 시에서 이런 감정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
-뒷모습 -(시인 정용철)
그 사람의 진실은
그의 뒷모습에 있다.
그가 돌아섰을 때
그가 떠났을 때
그가 멀어졌을 때
그의 진실을 알게 된다.
말을 들어도 모른다.
얼굴을 보아도 모른다.
눈물을 흘려도 모른다.
서로 마주 보는 사이
우리는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
나를 감추는 방법을.
하지만 뒷모습은
순결한 미지의 땅이어서
그대로 드러난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깊은 페이소스를 준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먼저, 그 사람이 ‘보는 이의 마음’에’ 들어와야 한다.
아마도 이창동 감독은 밀양 도입부가 끝났을 때, 신애가 관객의 마음속에 들어갔을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다시 영화가 시작될 때 배우의 뒷모습부터 등장한다는 것은 그런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장면일 것이다.
영화 ‘밀양’ 은 남편과 사별한 신애가 아들 ‘준’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살러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도입부에 바람 부는 낯선 도로 위에서 핸드폰을 하며 지나는 차에게 도움을 청하려 손을 흔드는 신애의 모습이라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전단지를 붙이며 다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위태롭게 보인다.
그러나 신애의 진짜 위태로움은 아니러니 하게도 자신의 위태로움을 감추려는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좋은 땅을 사고 싶다며, 소개해달라는 말은
낯선 땅에 온 외지인으로서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한 일종의 허세일수도 있지만
이것이 하필이면 유괴범이 될 웅변학원 원장 도섭(조영진)이 있는 자리였다.
영화는 신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지 않고 시작한다.
영화 영어 제목이<secret sunshine>임을 떠올려 보면
신애의 존재 역시 이미 비밀을 많이 갖고 있는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남편 고향이라는 것 밖에는 아무도 연고가 없는 그곳에 남편도 없는 여자가 딸랑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산다는 건
여간해선 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배경에는 감춰진 신애의 상처가 있다.
신애의 상처는 상처를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상처다.
남동생 민기 (김영재)가 누나는 왜 자기를 배신하고 딴 여자랑 산 매형을 잊지 못하냐고 묻자,
“니 매형은 나하고 준이만 사랑했어” 라며 오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전도연의 연기에서 신애가 남편의 배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편의 외도와 죽음으로 (짐작하건대 불륜녀와 같은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것 같다) 상처를 입은 신애가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선택한 곳이 ‘밀양’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영화 시작 때 신애가 밀양의 뜻을 말했듯이 ‘비밀의 햇볕’이 드는 땅,
그러니까 ‘밀양’은 삶의 어둠에 갇혀 있는 신애에게 뭔가 ‘비밀스러운 햇볕’ 이 되어 줄 것 같은 땅인 것이다.
신애는 그렇게 ‘비밀의 햇볕’을’ 찾아올 만큼 절박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억압’이고 다른 하나는 ‘억제’ 다.
억압은 무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억제는 의식적으로 누르는 것이다.
신애는 전자에 해당한다.
억압된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드러나서 같은 상처를 반복적으로 만든다.
하여 신애는 남편에게 받은 상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남편과도 같은 땅, 밀양’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영화 <밀양>을 해석함에 있어 가장 흔한 시선이 ‘용서와 구원’이라는’ 프레임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선 이 영화 제목에 힌트를 얻어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려 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플롯으로 진행된다.
신애의 아들이 유괴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신애를 남몰래 마음에 품고 주변을 맴도는 종찬의 플롯이다.
종찬의 플롯 때문에 이 영화를 멜로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그렇게 한정하기엔 이야기가 갖고 있는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깊고 넓다.
영화는 자식까지 잃게 된 신애가 기독교적 신에게 매달렸다가
그 신에게 마저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는 지점에서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신이 피해자인 나보다 더 먼저 가해자를 용서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 신애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애의 이름은 ‘신의 사랑’ 일수도 있겠다)
신에게 반항하며
독실한 강집사 (이윤희)를 유혹해 이탈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하늘을 향해 “보여? 보이냐구? 잘. 보. 이. 냐 구.” 하면서 신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것에 대해 신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애의 신에 대한 적개심의 시작은 어디부터였을까?
그 단서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강집사를 유혹했다가 실패한 그날은 원래 신애가 종찬과 저녁 약속을 한 날이었다.
종찬과 약속을 펑크 낸 신애가 종찬이 혼자 있는 카세터에 가서
종찬에게 자기가 지금 어떤 사람을 만나서 “하고 왔다” 말하면서
“김사장님도 하고 싶은교? 섹스” 라며 제정신이 아닌 모습으로 말한다.
뜨악한 종찬이 “정신 차리소!” 화를 내며 안에 집기들을 내동댕이치자
신애는 겁에 질려 나가면서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 열 살 때 분홍색 타이츠 때문에 운다고 벌줬잖아.
자긴 집에서 막 담배 피우면서 숟가락으로 머리 때리고!
내가 음대 간다고 했는데 당신이 못 가게 했잖아 씨팔 놈 이.. 좆같은.. 색골!
나 너한테 안져, 절대 안 져!”
첫 번째 대사는 아버지에게 한 말이 분명하다.
열몇 살 운운이 가장 결정적인 단서인데 아버지는 어린 신애의 옷차림 때문에 벌을 주면서 수저로 머리를 때렸다.
어린아이지만 상당히 모욕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음대 간다고 했는데 못 가게 한 사람은 남편이다.
쌍욕을 하면서 색골!이라고! 한 것은 그녀가 남편에게 가진 본심이다.
그리고 "나 너한테 안져, 절대 안져" 이 말은 신애가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향해 한 소리다.
즉, 신에게 하는 소리다.
신애에게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처음엔 폭력적인 아버지가,
다음으로는 자신을 배신하고 외도하다가 죽어버린 남편이 전이된 대상이다.
이들은 모두 신애의 삶을 ‘비밀의 햇볕’ 이 필요한 어둠 상태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책=프로이트와 종교
지은이=권수영
출판사=살림
‘프로이트와 종교’는’ 종교에 대한 프로이트의 연구를 풀어서 정리한 책으로 얇은 분량이지만
종교를 바라보는 프로이트의 생각을 잘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나온다.
“신이나 악마 모두 양가적인 아버지의 표상의 분리(split)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느님은 결국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라는 대상이고,
그 대상을 동경하고 회귀하는 표상과정이 결국 그 자체다”
프로이트가 본 종교인의 하느님은 결국 그들이 유아기 때에 관계를 가졌던 한 대상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후대 학자들은 ‘대상관계이론 (object relation theory)’ 라 부르며 발전시켰다.
대상관계이론은 우리가 세계와 맺는 관계방식에 대한 많은 힌트를 주는 놀라운 이론이다.
위에서 신애가 신을 아버지와 남편의 이미지로 전이시켰다고 했는데,
전이(transference)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주체가 특정한 대상이나 사람에게 감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자상한 아버지에게 자란 아이들은 신에 대한 관념도 그러하다.
반대로 엄격한 부친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역시 신에 대한, 혹은 종교관이 엄격한 경우가 많다.
영화<밀양>에서 신애는 기독교적 신에게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전이시켰다.
자신에게 상처 준 대상에 대한 불인정, 상처받았음을 억압한 결과다.
“억압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는 프로이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애가 교회 행사에서 찬송가 대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나오게 해 놓은 것은
아버지의 폭력, 남편의 불륜과 배신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 왔던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영화<밀양>을 용서와 구원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따로 있다.
용서와 구원이 가능하려면 일단 자신이 입은 상처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처 준 대상에 대한 감정 역시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여,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 동안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영화 속 신애는 자신의 깊은 상처를 마주하지 않은 채 힘들다는 이유로 용서하려했다.
그 결과 신애는 자신의 용서가 신에 의해 가로막혔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은 어쩌면 신이 끼어든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정리되지 못한 감정으로 섣부르게 용서를 하려고 나섰다는 자신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설프게 용서한 그 대상은 자신에게 폭행을 가한 아버지였고, 자신을 배신하고 외도한 남편이었다.
강집사를 유혹한 날.
종찬에게 도발한 날.
밤거리를 거닐며 아버지, 남편, 신에게 원망을 퍼붓던 그날.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모임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깬 그날.
집으로 돌아온 신애는 과일을 깎다가 칼로 자신의 팔을 베었다.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팔목을 보며 신애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신애는 혼미해진 정신으로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절규한다.
"살려주세요.."
신애는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난 이미 하나님한테 용서받았다” 며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유괴 살인범인 도섭의 딸에 대해
신애가 연민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상처와 마주했기 가능했다.
그리고 서브플롯으로 진행되었던 신애에 대한 종찬의 사랑이 눈에 들어온 것도
신애의 그런 변화 후에 찾아온 한 줄기 비밀의 햇볕일 것이다.
영화는 신애가 도섭의 딸이 하는 미장원에 앉아 있다가 뛰쳐나와 집에서 혼자 머리를 자르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도섭의 딸은 아무런 죄가 없지만 아직 신애의 마음은 그 아이한테 머리를 맡길 만큼 준비가 되진 않은 모양이다.
마당에 앉아 혼자 머리를 자르려는 신애.
그리고 마당에 한조각 햇볕처럼 ‘들어오는’ 종찬.
종찬은 너스레를 떨며 거울을 잡아준다.
신애는 머리를 자르고, 마당 한구석에 ‘밀양’ 이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