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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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품

지은이= 곽말약

옮긴이=김승일

출판사=범우사문고

 

 

이런 류의 글을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이지 딱히 붙일 말이 없는 걸 보면 <소품小品>이란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인 것 같다.

곽말약은 사천의 낙산 사람으로 사학, 문학에서뿐만이 아니라 정치 방면에서도 넓게 활동했던 인물이다.

<역사소품>은 그가 쓴 역사물 중에 하나인데 여덟 편 모두 역사적 배경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일종의 팩션이다. 

따라서 당연히 문학작품으로 읽혀야 한다. 

곽말약은 이런 장르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작가란 후에 만들어진 역사적 사실에 쫓기지 말고 자유롭게 역사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라는 것은 전통적인 견해로부터의 자유이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그 방면의 권위자가 될 정도로 지식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비갱집, 역사, 사극, 현실)

 

그의 말처럼 곽말약은 역사 지식의 바탕 위에서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즐겨 썼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훑어보자면 <노자,함곡관으로 돌아오다>에서는

도와 덕을 찾아 사막을 헤매다 자기 소만 죽이고 돌아온 노자가 관윤을 만나는 얘기다

노자는 소만 죽이고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합리화시키며 변명한다.

 이에 관윤은 천하의 도둑놈!”이라고 욕을 해댄다.

 

<공자, 죽을 먹게 되다>에서는 몇 날 며칠을 굶은 공자 일행이 어느 마을에서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되는데,

공자와 제자들은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들을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때 제자 안회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구명 노력을 하고 오해했던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을 준다. 

모처럼 쌀 구경을 한 안회가 죽을 끓이는 동안 공자는 배가 고파 기절할 지경이다. 

그런데 공자의 눈에 안회가 죽을 혼자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쌀알에 티가 빠져서 그걸 건져내는 것이었는데 공자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그 일 때문에 공자는 꽁한 마음에 안회를 슬쩍 떠본다. 

그러나 결국 진실을 알게 된 공자. 

공자는 잠시 난처해했지만 이내 다음처럼 행동한다.

 

잘했네, 잘했어. 안회여! 너는 훌륭한 성자이니라. 나조차도 너를 따를 수가 없구나

 공자는 다른 제자들에게 안회를 시험해 본 것을 고백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자신을 지켰다. 

먼저 제자를 엉뚱하게 의심했다는 양심이 가책에서 자신을 지켰고, 

다음으로 제자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스승으로 인정받으며 자신의 존엄을 지켜냈다. 

그러나 만약 안회가 공자처럼 꽁해서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으며 어땠을까?

 

공자: 안회여, 내가 너를 오해했다. 아임쏘리.

안회:... 섭섭하네요.저랑 하루 이틀 보는 사이도 아닌데..다음에 말씀하시죠.

공자: 내가 사과를 하잖냐. 그만 풀어 인마. 스승이 말씀하시는데.

안회: 아아.. 스승님이 아임쏘리 하면 전 뎃츠 오케이. 하면 되는 거죠??

공자: 뭐라?!

안회: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가상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 건 안회가 공자의 사과를 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때문이다.

곽말약’ 그저 공자가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려고 얕은 수를 썼다는 식으로만 풍자를 했지만

정작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공자 자신이 안회가  자기의 사과를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조차 못한 것에 있다.

사실 이같은 일은 조직 생활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무조건 사과를 받아줘야 할 수밖에 없는 입장' 에 처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상대가 무조건 자기의 사과를 받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전혀 기억에 없을 것이다.

왜냐, 강자는 자기가 약자를 억울하게 했는지 조차도 모르기가 쉽기 때문이다. 

 

곽말약은 이렇게 역사적 인물들의 어처구니없는 위선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이러한 그의 풍자는 <맹자, 처를 쫓아내다>에> 오면 절정에 이른다.

맹자는 마누라와 정사가 진하면 진할수록 낮에 거드름을 피웠는데, 

간밤에 갖은 체위로 진한 정사를 벌렸던 맹자 자신이 아내한테 품위가 떨어질까 봐 그런 것이다. 

맹자는 아내의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느낀다. 맹자는 방에 걸려 있는 공자의 그림을 보고 기도한다.

 

공자님도와주세요. 전요,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공자님께서 어부인과 난연(難緣이었던 것을 ,또 당신의 아드님도 어부인과 난연이었던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공문(孔門)의 적류(嫡流)이므로 이 문제만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발 저에게 힘을 주시옵서소. 오늘 이후부터 처와 관계를 갖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완전한 성인들의 무리에 들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공교롭게도 이걸 맹자의 아내가 들었다. 맹자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선은 내가 원하는 것이니라. 곰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생선을 여색에 비유하고 성인을 곰 발바닥에 비유한 이 말은 맹자가 즐겨 쓰던 문구로

 <맹자,고자 상편>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가 이렇게 속을 털어놓자 맹자 처는 떠나겠다며 눈물로 하직 인사를 한다.

 

선생님의 수행에 제가 방해가 될줄은 몰랐어요. 선생님 수행에 도움이 된다면 저는 불 속에라도 뛰어들겁니다"

 

맹자는 그런 아내의 모습에서 대오각성한다.

평소에 인()과 의(義)를 강조하던 자기 자신보다 아내가 인과 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 있는 공자님보다 가까이 있는 아내가 스승이었다.

 

결국 맹자는 아내와 잘 지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데 이대목 역시 곽말약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 

맹자도 이 책에 나오는 공자랑 똑같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다. 

맹자가 대오각성한 것은 굳이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지 않은 방법을 아내의 모습에서 찾았을 뿐이다.

 

, 아내를 보내지 않는 방법도 있겠구나!. 

아내가 스승인데 괜히 공자님만 찾았네. 

아내랑 여전히 잘 지내면서 공부를 해야겠구나. 

생선이랑 곰발바닥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가질 수 있는데 괜히 내가 나이브해선 고민했네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이긴 하지만 곽말약이 저 이야기를 썼던 시대보다 한참 지났으니 풍자도 새롭게 해야 한다. 

지금 맹자의 태도는 이런 식이다.

속세를 떠나 깨달음을 얻겠다고 출가를 결심한 구도자가 여자 친구를 놔두고 떠나기 어려우니,

진짜 깨달음은 사바에 인연에 머물러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자기변명을 하면서

쌌던 짐을 도루 풀곤 눌러앉는 것처럼 말이다. 

맹자 역시 이 책에 나오는 공자처럼 적당히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것이다.

 

곽말약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이나 행간의 풍자를 통해

근엄하기만 공자, 맹자를 우리와 똑같이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묘사했다. 

곽말약의 풍자가 그들을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뿐더러 그런 풍자로 손상될 만큼 가벼운 위인들도 아니다. 

풍자란 약자가 강자를 향해하는 것이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풍자와 해학에 능하다.

‘풍자’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으로 나와 있고,

 해학은 익살스러우면서도 품위가 있는 말과 행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풍자’는 다소 공격적이고 

해학은 풍자가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게 하는 일종의 풍자의 애티튜드로 봐야 한다. 

풍자와 해학은 기층민층의 기득권층에 보내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데 귄위주의적 사회는 이런 걸 용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이며, 온갖 법규로 막는다. 

그렇게 되면 풍자와 해학을 통해 분출되던 기층민들의 불만과 요구가 결국 쌓이고 쌓여 터지게 된다. 

곽말약처럼 공자와 맹자를 풍자와 해학으로 푸는 사람이 없으면

공자와 맹자는 그들이 했던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날카롭게 평가받으며, 

하나의 티끌로 인해 그가 살아온 인생 전부를 부정당하는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 

하여 풍자와 해학은 기층민들에겐 불만과 욕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득권층에겐 자신들의 허물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어지간한 허물로는 진지하게 공격당하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 구실을 하는 것이다아마, 이 책은 절판됐지 싶은데, 도서관에 들을 일이 있으면 한 번쯤 일독해도 좋은 책이다. 문고판이라 금방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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